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르노 FT (문단 편집) ===== [[프랑스 침공]] ===== 하지만 아무리 명전차라도 세월의 흐름을 이길 수는 없는 법. 더욱이 나치가 집권한 이후 유럽의 안보정세가 요동치면서 프랑스군은 부랴부랴 기갑부대의 현대화와 신형 전차 생산을 서둘렀다. 그 덕택에 1940년, 독일 국방군의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 육군은 주력 보병전차로 [[르노 R35]]나 [[호치키스 H35]] 등을 운용할 수 있었다. 이들 전차는 개전 시점에서 각기 1,500대 이상 생산되어 있었고 FT-17은 예비역 내지 보조 정도의 위치만 차지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프랑스군은 여전히 상당한 수량의 FT-17을 운용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개전 시점에서 프랑스 본토에는 각 63량[* 다른 전차를 장비한 기갑대대는 45량으로 구성됐다.]의 7개 일선대대를 비롯한 504량이 배치되었다. 프랑스군의 기갑부대가 전체수량에서 독일군보다 오히려 우세하긴 했으나 프랑스 쪽에는 상당수의 FT-17이 포함되었다는 허점이 있었다. 또한 FT-17을 대체한 R35나 호치키스 H35 역시 근본적인 설계사상과 운용방식이 FT-17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물론 FT-17에 결함이 있어서라기보다는 1차 대전에서의 성공에 안주한 것이 문제였지만. 당장 FT-17에 장착된 퓌토 SA18 21구경 37mm 전차포는 400m에서 35도 경사 장갑 21mm(사실상 26mm)를 관통하는 정도의 단포신 보병포라 사실상 [[유탄발사기]]에 불과하므로 전차전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었다. 장갑도 연강(軟鋼)판을 리벳 접합한 것이라 20mm [[기관포]], [[수류탄]]에도 구멍이 숭숭 뚫렸다. 때문에 1930년대 초 근대화개장을 거쳤던 것도 8mm 호치키스 기관총을 7.5mm 레이벨 MAC Mle 31 기관총으로 교체하고 주행성능을 개선하는 정도로 그쳤다. 르노 또한 FT-17의 성능한계를 인정해서 르노 NC라는 개량형을 이미 1926년에 제시했지만 설계 자체가 구식이라 채용되지 못했다. 37mm L/21 SA18 퓌토 전차포는 후일 37mm L/21 SA18 M37이라는 개량형이 등장, 관통력을 배 이상 증가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는 르노 R35/40이나 호치키스 H35/39, [[FCM 36]]에 탑재되어 그 우수함을 증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스페인 내전]]에서 45mm 20-K(500mm에서 46mm 관통력) 전차포를 장착한 [[T-26]] 중기형과 [[BT 전차|BT-5]]까지 상대해본 독일군 [[대전차포]] 중대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하여 프랑스 항복 때까지 전선에 동원할 수 있었던 건 기껏 520대 정도였고 나머지는 [[프랑스 국가 헌병대|국가헌병대]]나 식민지군이 순찰용도로나 사용했다. 굳이 패인을 제공한 것이라면 [[프랑스군]]의 고위 관료들에게 전차는 두 명이 타는 물건이라는 인식을 박아놓은 점이다. 이후 보관중이던 물량까지 포함하여 1704대가 프랑스, 벨기에,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독일군에게 노획, 접수되었다. 차마 이런 빈약한 장갑과 화력을 지닌 물건을 일선에서 쓰기엔 무리가 있었던 터라 주로 루프트바페의 비행장 경비용 차량, [[경찰]] 등의 후방부대에서 파르티잔 소탕용으로 쓰이거나 포탑을 떼내어 탄약운반차나 트랙터 대용으로 쓰고 떼낸 포탑은 [[대서양 방벽]]의 고정포대 대용으로 사용했다.[[https://m.blog.naver.com/minjune98/221087380673|#]]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